Daily Life/Reflections

[회고] 뒤늦은 2018년 회고 - 첫 회사와의 이별

Sujin Lee (Daisy) 2019. 6. 30. 16:36

오늘은 2019.06.30 (일). 2019년 상반기의 마지막 날이다. 

이전할 블로그도 픽스한 만큼 여기에 상반기 회고를 해보려 했으나, 2018년을 꼭 정리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던 게 늘 마음에 걸렸었다. 그래서 우선 매우 늦은 2018년 하반기 회고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도비는 자유에요!" - 첫 회사 퇴사

'초두효과(primacy effect)'라는 게 있어서 사람의 뇌는 연속적인 정보 중 첫 번째 정보를 가장 명확하고 강렬하게 기억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첫 키스의 날카로운 추억'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내게는 첫 회사가 그랬다. 그만둔 지 8개월쯤 된 것 같은데, 아직도 그 근처를 지나갈 때면 추억에 젖는다. 무엇이든 '첫'이라는 건 참 강렬한 것 같다. 

2018년 하반기 첫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했다. 회사에 다니며 좋은 기억도, 힘들었던 기억도 참 많았다. 

 

 

+1.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기쁨 

 

첫 회사는 IT업계 중견기업이었는데, 업력도 꽤 길고 IT업계치고는 다소 보수적인 곳이었다. 소위 힙한 IT업계의 표본은 아니었지만, 매출도 안정적으로 나왔고 회사가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처음으로 TV CF를 방영하던 날엔 '우리 회사도 TV CF를 찍다니..!' 하고 감격했다. 집에서 TV 채널을 돌리다가 중간에 회사 광고를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과 소소한 기쁨이 있었다. 또,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목표 달성을 할 때면 소액의 현금이나 문화상품권 같은 걸 줄 때가 있어서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2. 신입 시절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우선, 좋은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사수분부터 너무 좋으셨는데,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일 때 정말 많은 걸 가르쳐주셨다. 입사 극 초반에는 이메일이나 보고서까지 다 피드백을 주셨는데, 나중에서야 이 사수분이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친절하신 사수분이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OO아, 나라면 이메일을 이렇게 쓸 것 같아', '보고를 할 때는 꼭 결론부터 써야 해.', '나라면 이렇게 할 것 같아'와 같이 기초부터 친절하게 가르쳐주셨다. 

(최OO 파트장님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인복이 좋았는지 모바일 기획 쪽을 시작하고도 좋은 선배를 만나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 분께는 '꼼꼼하고 철저하게 일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ITS 사용법부터 Wiki(Confluence)에 정책을 기록하고 히스토리를 남기고... 일하는 방식에 정말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었다. 그리고 일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다들 열심히 일하시지만 이렇게까지 열심히 일하시는 분은 정말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또, 협업자와 관계를 잘 구축해야 한다거나 개발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분을 통해서 배웠다. 이 분 덕택에 주경야독으로 개발 공부를 시작했다가 나중에 개발자로 전직까지 했다. 
(우OO 대리님 잘 지내시나요?!? 정말 감사해요..!) 

 

시간이 흘러 연차가 쌓이면서 교육받는 입장이 아니라 교육하는 입장이 되어 신입/신규 입사자 OJT 및 교육을 하게 되었고, 그제야 이전 사수분들이 내게 해주셨던 일들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왜냐면 사실 누군가를 교육한다는 것이, 냉정하게 말하자면 성과에는 직접적인 도움도 되지 않으면서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다들 좋아하지만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내게 시간을 할애해서 가르쳐주셨던 분들께 정말정말X10000 감사하다.

 

두 번째로,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신입으로 입사한 뒤에는 회사 창립기념일 행사에서 전 직원(약 300명? 500명?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앞에서 신입 공채 대표로 건배사 제의를 하기도 했었다. 사실 저 날 너무 떨어서 체하고 화장실 가서 게워내고... 혼자 난리였지만, 신입으로써 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었던 것 같다. 

 

회사 창립기념일 제주도 행사에서. 행사 사진 담당이셨던 대리님과 친해서 사진을 받았다 ㅋㅋㅋ

어쩌다 보니 연차가 높은 팀에 배정받아서 거의 4년을 다녔는데도 퇴사할 때까지 막내였다. 그러다 보니 플레이샵 (플레이+워크샵) 준비와 같은 잡무를 맡게 될 때가 종종 있었는데, 처음 스태프가 되었을 때는 사실 반갑지 않았지만 보니 재미있었다. 타 부서분들과 협력하는 거도 재미있었고 스태프 아닌 분들도 너무 다정한 분들이 많으셔서 스태프들에게 격려를 많이 해주셨기 때문이었다. 

 

다들 너무 귀여우셔서 캡쳐해뒀던 화면 ㅋㅋ 사원부터 팀장님 연구원분 실장님까지 댓글놀이 ㅋㅋ

 

+3. 사람이 좋은 곳

 

이 회사에 다니는 분들이 한 가지 인정하시는 건 '이 회사가 사람들이 참 좋아'라는 거였다. 

 

사실 업무강도가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어서 52시간제 시행 전에는 꽤 많은 야근을 했었다. (다른 분들은 일찍 퇴근했을 수도 있는데, 내가 초반에는 일 배우느라 늦게 퇴근한 것도 있을 수도 있다. 또, 52시간제 시행 후에는 그래도 워라밸이 그래도 꽤 나아졌던 것 같긴 하다.) 고생할수록 사람들 사이는 끈끈해지는 것 같다 ㅋㅋ 근속연수가 길어지면서 개발자분들 동료 기획자분과 그리고 상사분들까지도 매우 친해져서 재미있게 지냈다. 비단 기획-디자인-개발팀 뿐만 아니라 영업지원 팀에도 마케팅 팀에도 친한 분들이 있어서 협업하기도 정말 편했다. ㅎㅎ 퇴사한지 거의 8개월이 다 돼가는 아직까지도 몇몇 분들을 사석에서 만나기도 한다. ㅎㅎ

 

+4. 회사는 함께 일하는 곳이란 걸 배웠다. 

 

회사에 다니던 초반에는 '기획서만 잘 쓰면 되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기획자의 일이란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었다. 이견을 조율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갈등을 풀고... 하나의 Product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한마음으로 협업해야 한다는 것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1. 일하는 방식과 문화

 

이때까지 좋은 점만 썼는데, 사실 모든 회사가 그렇듯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형적인 waterfall 조직이었는데, 기획자가 책임질 것은 많았으나 권한은 부족했다. 그래서 모든 갈등의 상황을 기획자가 맨몸으로 부딪혀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농담으로 '기획자는 을(乙)이다'고 자조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내가 기획자라 기획자의 입장만 대변하지만, 잘은 모르지만 아마 타 직군도 나름의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일하는 방법/문화가 좀 더 개선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미 떠난 곳이고, 다닐 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내 의견을 윗분들께 말씀드렸었기에 만족한다.  

 

2018년 회고가 아니라 첫 직장 퇴사 회고가 된 느낌이지만, 그만큼 이 회사가 나에게 미친 영향이 컸었다. 

그 회사에서 만났던 모든 분이 꽃길만 걸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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