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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보건교사 안은영 - by 정세랑

Sujin Lee (Daisy) 2020. 10. 5. 01:04

넷플릭스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고 푹 빠져서 밤을 꼴딱 새우며 하루만에 다 시즌1을 다 봤다. 그 후에 넷플릭스 드라마의 원작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책까지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인상적이었던 구문>

“있잖아, 다음 선거에는 너희들한테도 선거권이 있어.”

 대흥의 설명을, 어른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세계를 특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끄트머리에 그렇게 덧붙여 주기도 했는데 그러면 아이의 눈 안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대흥은 그 반짝임 때문에 늘 희망을 얻었다. 뒤에 오는 이들은 언제나 더 똑똑해. 이 아이들이라면 우리보다 훨씬 나을 거야. 그러니까 그 바보 같은 교과서를 막길 잘했어.

 

인표는 꽃무늬를 싫어했다. 꽃에 반감이 있다기보다는, 그게 너무 쉬운 선택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꽃무늬를 고르는 사람들은 대체로 세련되지 못하고 정신없이 산만한 편이라는 게 인표의 속생각이었다. 꽃무늬 원피스도 꽃무늬 가방도 싫다. 신발이라면 더더욱 싫다. 은영에겐 열대의 꽃이 다홍색으로 크게 번지는 블라우스가 있었고, 잔꽃들이 바랜 색으로 가득한 어정쩡하게 긴 원피스도 있었고, 복주머니처럼 힘없이 생긴 인조가죽 가방 안쪽은 뜬금없이 꽃무늬 안감이었고, 지갑조차 낡은 꽃무늬의 비닐 코팅 장지갑이었다. 별로 여성성을 강조하는 타입도 아니면서 은영은 늘 꽃무늬를 골랐다.

 

그리하여 인표는 자발적으로 꽃무늬 지옥에 걸어 들어갔다.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다가 어느 날 눈떠 보니 꽃무늬 커튼이 달린 집에서 꽃무늬 이불을 덮고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아득한 날이면, 혹시 이 여자가 내 겨드랑이에 나 몰래 매듭 같은 걸 묶었나 슬쩍 만져 볼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이 하루도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인테리어 취향 차이에서 오는 괴로움을 빼면 전반적으로는 만족할 만했다. 서로의 흉터에 입을 맞추고 사는 삶은 삶의 다른 나쁜 조건들을 잊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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