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Life/Book Reviews

[책 리뷰] 사피엔스 - by 유발 하라리

Sujin Lee (Daisy) 2020. 10. 14. 18:31

 

책 <사피엔스> 표지

 

몇 년 전에 사두고 두께의 압박(636쪽) 때문인지 읽지 않고 있던 책. 친구들과 함께 북클럽을 하면서 4-5일만에 후루룩 다 읽었다. 처음 100쪽 까지는 다소 지루했지만 100쪽 이후로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농경사회의 등장, 돈의 작동원리, 신용의 등장, 자본주의, 성별, 제국주의,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상을 저자만의 시각으로 색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특히 농경사회의 등장이 수렵채집 시절보다 노동 시간을 늘림으로써 인간의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는 해석과 불교에 대한 서술이 흥미로웠다. 다만, 제국주의에 관한 기술은 식민지를 침략한 제국이 식민지 국가의 발전과 번영에 기여했다는 관점이 많이 보여서 피지배국가였던 한국의 국민으로써 식민지배에 대한 울분을 교육받아온 내 입장에서는 기껍지 않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정말 색다른 시각이 많은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또한, 자본주의와 불교철학에 대해 좀더 알고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구문>

 

 

# p123
한때 학자들은 농업혁명이 인간성을 향한 위대한 도약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 p129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중략)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 p134
좀 더 쉬운 삶을 추구한 결과 더 어렵게 되어버린 셈이었고, 이것이 마지막도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 중 상당수는 돈을 많이 벌어 35세에 은퇴해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유수 회사들에 들어가 힘들게 일한다. 하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면 거액의 주택 융자, 학교에 다니는 자녀, 적어도 두 대의 차가 있어야 하는 교외의 집, 정말 좋은 와인과 멋진 해외 휴가가 없다면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들이 뭘 어떻게 할까? 뿌리채소나 캐는 삶으로 돌아갈까? 이들은 노력을 배가해서 노예 같은 노동을 계속 한다.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우리 시대의 친숙한 예를 또 하나 들어보자. 지난 몇십년간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는 기계를 무수히 발명했다. 세탁기, 진공청소기, 식기세척기, 전화, 휴대전화, 컴퓨터, 이메일... (중략)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슬프게도 그렇지 못하다. 

 

# p161
(함무라비 법전에서) 사람은 성별과 계급에 따라 각기 다른 가치를 지닌다. 평민 여성의 목숨 값은 은 30세겔이고, 노예 여성은 20세겔이다. 이에 비해 평민 남성의 눈은 은 60세겔의 가치가 있다. 

 

사람들이 가장 개인적 욕망이라고 여기는 것들조차 상상의 질서에 의해 프로그램된 것이다.예컨대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흔한 욕망을 보자. 이런 욕망은 전혀 자연스럽지도, 당연하지도 않다. 침팬지 알파 수컷은 권력을 이용해 이웃 침팬지 무리의 영토로 휴가를 갈 생각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오늘날 사람들이 휴가에 많은 돈을 쓰는 이유는 그들이 낭만주의적 소비지상주의를 진정으로 신봉하기 때문이다. 

 

# p247 
돈은 어떻게 신과 왕이 실패한 곳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 

 

불교 전통에 따르면 고타마는 그 자신이 열반에 들었으며 고통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그는 '부처'로 알려졌다. '깨달은 자'라는 뜻이다. 부처는 모든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여생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발견을 전하는 데 바쳤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한 가지 법칙으로 요약했다.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난다는 것,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있다는 것,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법(Dharama, 다르마)으로 알려진 이 법칙은 불교도에게 보편적 자연법칙으로 이해되고 있다. '고통은 집착에서 생긴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진리다. 현대 물리학에서 E가 늘 mc^2과 같은 것과 마찬가지다. 불교도는 이 법칙을 믿고 모든 행동의 지주로 삼는 사람들이다 한편 신에 대한 믿음은 이들에게 그리 중요치 않다. 일신론적 종교의 제일 원리는 "신은 존재한다. 그분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인 반면 불교의 제일 원리는 "번뇌는 존재한다. 나는 거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이다.

 

불교에서 번뇌의 근원은 고통이나 슬픔에 있지 않다. 심지어 덧없음에 있는 것도 아니다. 번뇌의 진정한 근원은 이처럼 순간적인 감정을 무의미하게 끝없이 추구하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긴장하고, 동요하고, 불만족스러운 상태에 놓인다. 이런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기쁨을 느낄 때조차 만족스럽지 않다. 기쁜 감정이 금방 사라져버릴 것이 두렵고, 이 감정이 이어져 더 강해지기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런저런 덧없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속성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갈망을 멈추는 데 있다. 이것이 불교 명상의 목표이다. 명상을 할 때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깊이 관찰하여 모든 감정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며, 그런 감정을 추구하는 것의 덧없음을 꺠달아야 한다. 그런 추구를 중단하면 마음은 느긋하고, 밝고, 만족스러워진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