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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시선으로부터, - by 정세랑

Sujin Lee (Daisy) 2020. 11. 23. 01:54

책 <시선으로부터,> 표지

 

IT업계 사모임 동료분이 내가 이 책을 좋아할 것 같다고 추천해주셔서 잠이 오지 않는 어느날 밤 읽었고, 푹 빠졌다. <시선으로부터,>는 '심시선'이라는 작고한 여성의 아들딸과 그 아들딸들의 이야기이다. 심시선으로부터 비롯된 이들은 나이대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관심사도 다르지만 각 시대의 여성의 위치와 삶을 직간접적인 목소리로 들려준다. 이 책에는 현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들이 관심있어할만한 갖가지 요소 - 여성의 삶, 환경보호,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인 억압으로부터의 저항, 여성간의 연대, 다양성-를 고루 갖춘 책이다. 게다가 작가분의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다워서, 다이어리에 필사하고 몇번이고 곱씹어보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정말 이런 문장은 어떻게 쓰는 걸까? 같은 작가(정세랑 작가님)가 쓴 <보건교사 안은영>은 그냥 '재미있네~'라는 감상 정도였지만 이 책은 정말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다 보석같았다. 이 작가는 머릿속에 보석상자를 숨겨두고 세상이 힘든 사람들을 위해 작품에 하나둘씩 보석을 꺼내 문장으로 세공하는 드워프가 틀림 없을 거다. 

 

<인상적인 구문>

# 9%

언니들, 친구들, 동생들... ... 거의 격년으로 한 사람씩을 잃었습니다. 예민해서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는 건 압니다. 파들파들한 신경으로만 포착해낼 수 있는 진실들도 있겠지요. 단단하게 존재하는 세상을 향해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행위는 사실 자살을 닮았을 테고요. 그래도 너무 많이 잃었습니다. 
다 포기하고 싶은 날들이 내게도 있습니다. 아무것에도 애착을 가질 수 없는 날들이.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내 안의 나선 경사로를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구부러진 스프링을 어떻게든 펴야겠다고. 스스로의 비틀린 부분을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 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 96%

그러나 말이란 건 그렇습니다. 일관성이 없어요. 앞뒤가 안 맞고, 그때의 기분 따라 흥, 또다른 날에는 칫, 그런 것이니까 그저 고고하게 말없이 지낼 걸 그랬다 뒤늦은 후회도 합니다. 
(중략) 맞는 말도 제법 했고 틀린 말도 적잖이 한 것 같은데 내가 멈추면 다음 사람이 또 맞는 말과 틀린 말을 섞어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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